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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민물장어와 Domaine de la butte 'Le Haut de La Butte' Bourgueil 2022음식 2025. 6. 16. 12:09
동호민물장어 : 😋😋

동호민물장어 내부 금요일 저녁의 시청.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과의 목적지는 ‘동호민물장어’. 시청 역 바로 앞에 위치한 이곳은 '터줏대감'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이 장소에 묵묵히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실내는 기대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낡고 닳아 있었다. 어두운 갈색 톤의 목재 가구에는 무수한 손길이 스쳐 간 흔적이 역력했고, 천장의 희미한 백열등 조명은 공간 전체에 몽환적인 막을 씌운 듯했다. 금요일 저녁 7시라는, 한때는 도심의 모든 식당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시간이 무색하게도, 우리를 제외하고는 단 한 개의 테이블만이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마저 이내 자리를 떴을 때, 십수 개의 테이블이 놓인 거대한 공간은 오롯이 우리 차지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 회식 문화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특히 금요일 저녁의 풍경이 얼마나 극적으로 변해버렸는지, 그 현실을 피부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텅 빈 공간의 정적은 오히려 우리 대화의 밀도를 높여주었다.





메뉴는 소금구이와 간장구이(각 1마리당 37,000원), 각각 두 마리씩 주문했다. 이윽고 숯불이 들어오고, 그 위로 선홍빛 피가 살짝 묻은 장어가 길게 눕혀졌다. 직원의 능숙하고 무심한 손길 아래, 잿빛의 미끄러운 껍질은 점차 팽팽하게 수축하며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며 피워 올리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다.
먼저 맛본 것은 소금구이였다. 파삭,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이 사이에서 부서지는 껍질의 식감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씹는 행위가 쾌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껍질 바로 아래의 지방층은 응축된 고소한 풍미를 크림처럼 터뜨렸고, 두툼하고 담백한 속살은 그 모든 맛을 묵직하게 받쳤다. 최소한의 소금 간은 장어 본연의 맛과 향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온전히, 그러나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반면 간장구이는 단맛과 짠맛이 조화로운 양념이 살 속까지 깊이 배어들어 있었으나, 그 축축한 양념이 소금구이의 바삭한 껍질이 선사한 절정의 식감을 다소 무디게 만드는 인상이 있었다. 양념의 존재감이 오히려 장어 자체의 매력을 반감시킨 셈이다. 이날의 승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소금구이였다.
남자 셋이 네 마리의 장어를 비우니, 과하지 않은,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한 양이었다. 낡고 한적한 공간, 최상의 맛을 보여준 소금구이, 그리고 장어와 카베르네 프랑의 예기치 않았던 눈부신 조화. 시청의 낡은 장어집에서의 금요일 밤은 그렇게 하나의 완성된 미식 경험으로 기억되었다.
이날의 식사를 위해 어떤 와인을 가지고 갈 지 고민하다가, 프랑스인들이 장어 요리에 종종 카베르네 프랑을 곁들인다는 말을 듣고 셀러에 누워있던 와인을 챙겨갔다. 프랑스 루아르 밸리의 존경받는 생산자, 자키 블로(Jacky Blot)의 카베르네 프랑이다. 참고로 동호민물장어의 콜키지 비용은 병당 2만원이다.
Jacky Blot의 Domaine de La Butte, Le Haut de La Butte bourgueil 2022

녹색 후추에서 제비꽃과 흑연으로
역사적으로 루아르 밸리의 까베르네 프랑은 보르도의 위대한 품종에 가려진, 때로는 미숙한 '녹색 후추(green pepper)' 향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볍고 소박한 비스트로 와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에 걸쳐 이 품종의 위상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이 혁명의 중심에는 부르고뉴의 '떼루아(terroir)' 개념을 루아르에 이식한 선구자들이 있었고, 故 자키 블로(Jacky Blot)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도멘 드 라 뷔트, 르 오 드 라 뷔트 부르게일 2022(Domaine de la Butte, Le Haut de la Butte Bourgueil 2022)'는 단순한 와인이 아니다. 이는 생산자의 철학, 땅의 고유한 목소리(떼루아), 그리고 기후가 남긴 인장(빈티지)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완벽한 삼중주를 이루어낸, 루아르 까베르네 프랑의 현대적 정체성에 대한 선언문이다.
자키 블로의 비전과 철학
와인의 세계에서 위대한 생산자는 포도를 기르는 농부를 넘어, 떼루아의 잠재력을 해석하고 구현하는 건축가와 같다. 자키 블로는 군 낙하산 부대원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을 거쳐 와인 중개상(courtier)으로 일하며 루아르의 숨겨진 보석 같은 포도밭들을 속속들이 파악했다. 이 경험은 그가 1980년대 후반, 몽루이-쉬르-루아르(Montlouis-sur-Loire)에서 '도멘 드 라 타이 오 루(Domaine de la Taille aux Loups)'를 인수하며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결정적인 자산이 되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철학을 도입했다.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배제한 유기농법, 땅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밭갈이, 완벽한 포도송이만을 선별하는 손 수확, 그리고 떼루아의 고유한 특성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한 자연 효모 발효가 그의 원칙이었다. 특히 그는 슈냉 블랑(Chenin Blanc) 양조 시, 인위적인 젖산 발효를 막아 품종이 지닌 날카로운 산도와 미네랄리티, 즉 떼루아의 '긴장감(tension)'을 보존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그의 와인을 동시대 다른 와인들과 차별화하는 상징이 되었다.
2002년, 그는 이 성공적인 철학을 레드 와인에 적용할 새로운 무대를 물색했고, 부르게일(Bourgueil) 최고의 포도밭으로 알려진 남향 언덕 '라 뷔트(La Butte)'를 인수했다. 이곳에서 그는 부르고뉴의 '크뤼(Cru)' 시스템을 대담하게 도입했다. 그는 '도멘 드 라 뷔트'라는 단일 포도밭을 하나의 단위로 보지 않았다. 대신, 미세한 토양의 차이와 경사도에 따라 밭을 세 개의 구획으로 나누고, 각각의 개성을 담은 별개의 와인을 생산했다.
- 르 피에 드 라 뷔트 (Le Pied de la Butte): 언덕 기슭. 점토질이 많아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과실 풍미가 풍부한 스타일.
- 라 미-팡트 (La Mi-Pente): 중간 경사면. 구조감과 과실미의 균형이 절묘한 스타일.
- 르 오 드 라 뷔트 (Le Haut de la Butte): 언덕 정상. 가장 척박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자라 가장 응축되고 장기 숙성 잠재력이 뛰어난 스타일.
이는 루아르 지역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시도였으며, 와인을 단순한 '부르게일 AOC'에서 부르고뉴의 '클리마(Climat)'처럼 특정 구획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2023년 그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곁에서 10년 이상 함께 일하며 철학을 완벽하게 체득한 아들 장-필립 블로(Jean-Philippe Blot)가 그 유산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고 있다.
부르게일 '라 뷔트' 떼루아
부르게일 AOC는 루아르 강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개의 지질학적 정체성을 가진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와인 스타일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 레 바렌 (Les Varennes): 강에 인접한 평탄한 충적토 지대. 모래와 자갈(graviers)이 주를 이루며 배수가 탁월하고 열을 쉽게 흡수한다. 이곳의 와인은 과실 풍미가 풍부하고 타닌이 부드러워 비교적 일찍 즐기기 좋은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 르 튜포 (Le Tuffeau): 숲을 등진 언덕 경사면. 이 지역의 건축물에도 사용되는 백악질 석회암 '튜포'가 기반암을 이룬다. 튜포는 건조한 해에는 수분을 머금어 공급하고, 습한 해에는 뛰어난 배수성을 보여주는 천연 조절 장치 역할을 한다. 이 토양에서 자란 까베르네 프랑은 견고한 구조감과 풍부한 타닌, 복합적인 미네랄리티를 지녀 위대한 '뱅 드 가르드(vin de garde, 장기 숙성용 와인)'의 잠재력을 갖는다.
'도멘 드 라 뷔트'는 바로 이 튜포 석회암 경사면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특히 '라 뷔트' 언덕은 남쪽을 향해 열린 원형 극장과 같은 형태로, 최적의 일조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북쪽 숲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천혜의 미기후(microclimate)를 자랑한다.
'르 오 드 라 뷔트' 구획은 이 언덕의 정점에 위치하여 가장 극적인 떼루아를 보여준다.
- 고도와 토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표토층이 얇고 척박하다. 포도나무는 생존을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은 튜포 기반암까지 뻗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와인은 놀라운 미네랄리티와 복합미를 얻는다.
- 실렉스(Silex)의 존재: 이 구획의 가장 큰 특징은 점토-석회질 토양에 섞인 실렉스(silex, 부싯돌)다. 실렉스는 와인에 특유의 '부싯돌 치는 냄새', 즉 건파우더나 스모키한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르 오 드 라 뷔트'가 다른 부르게일 와인과 구별되는 독특한 아로마 프로필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 포도나무 수령: 평균 35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포도나무들은 깊은 뿌리 시스템을 통해 가뭄과 같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며, 토양의 미세한 요소들을 포도알에 더욱 효과적으로 농축시킨다.
르 오 드 라 뷔트(Le Haut de La Butte) 2022 빈티지
2022년은 루아르 밸리에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이 닥친 해였다. 자칫 과숙되고 산미가 부족한 와인이 생산될 수 있는 위험한 해였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르 오 드 라 뷔트 2022'는 뜨거웠던 해의 풍부한 과실 농축미와 함께 루아르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산도와 신선함을 완벽하게 유지했다. 이는 튜포 석회암의 뛰어난 수분 조절 능력과 깊게 뿌리내린 고목의 저력 덕분이다.
양조 과정은 자키 블로의 철학을 그대로 따른다. 완벽하게 익은 포도만을 손으로 수확하여 엄격하게 선별한 후, 100% 줄기를 제거하여 풋내를 없애고 과실의 순수함을 극대화한다. 콘크리트 탱크와 대형 오크통에서 오직 자연 효모의 힘으로만 발효를 진행한다. 숙성은 약 12개월간 콘크리트 탱크와 여러 번 사용한 중고 오크통(228L & 400L)에서 이루어진다. 새 오크의 풍미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산소 접촉을 통해 와인의 구조감을 다듬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최종적으로 정제나 여과 없이 병입하여 와인이 지닌 모든 풍미와 질감을 그대로 보존한다.
시음 후기


Domaine de la Butte, Le Haut de la Butte, Bourgueil 2022
산지: France > Loire > Bourgueil (Lieu-dit 'Le Haut de la Butte')
품종: Cabernet Franc 100%
알코올: 13.5%
양조: 자연 효모로 발효. 콘크리트 탱크와 중고 오크통에서 약 12개월 숙성 (새 오크통 미사용). 비정제, 비여과.
전문가 평점: Wine Advocate 93점, Wine Doctor 93점.
시음글래스: 동호민물장어 제공 막잔
구입정보: 4.2만원 / 직구(위클리와인)
재구매의사: 높음- 색상: 깊고 불투명한 루비-퍼플 색상.
- 향: 향 강도 중간+, 잔에 따르자마자 잘 익은 블랙 커런트, 블랙 체리와 같은 검은 과실 향이 후각을 지배한다. 시간이 지나면서제비꽃의 우아한 꽃향기,허브, 흑연, 젖은 돌의 미네랄리티, 그리고 이 와인의 시그니처인 부싯돌의 스모키한 향이 복합적으로 피어오른다. 미묘한 감초와 시나몬의 스파이스 뉘앙스가 깊이를 더한다.
- 맛: 입안을 꽉 채우는 미디엄-풀 바디의 질감. 풍부한 과즙미와 농축미가 느껴지지만, 결코 무겁거나 둔하지 않다. 당도는 드라이, 산도 M+로 적당한 산도가 와인의 뼈대를 굳건히 잡아주며, 뜨거운 빈티지임에도 전혀 뜨거운 빈티지임을 알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신선함을 선사한다. 타닌은 벨벳처럼 부드럽다기보다는, 마치 고운 모래알이나 분필 가루를 살짝 머금은 듯한 질감 있는(textural) 타닌으로, 기분 좋은 저항감을 주며 긴 여운의 바탕이 된다. 피니시는 과실 풍미와 미네랄리티가 어우러져 수십 초간 지속된다.
카베르네 프랑 100% 와인이라 피라진이 너무 강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잘 익은 론 와인처럼 느껴졌고, 그린 노트보다는 과실 노트가 매우 강력해 신선함이 쭉 이어졌다. - 숙성 잠재력 : 지금 바로 마셔도 좋다. 앞으로 10년 이상 숙성 잠재력이 있을것으로 보인다.
- LC Point : 91 / 100
장어구이와의 페어링
이날 페어링 결과는 기대 이상,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와인이 가진 특유의 허브 향과 붉은 베리류의 생동감 넘치는 산미, 흑연처럼 서늘한 미네랄리티와 은은한 흙 내음이 장어의 기름진 맛을 정확하게 제어하고 풍미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기름진 음식이 레드 와인의 타닌을 부드럽게 만들고, 와인의 산미는 다시 입안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완벽한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장어의 동물적인 고소함과 와인의 식물적인 상쾌함이 만들어내는 균형은 실로 완벽에 가까웠다. 장어구이에 와인을 페어링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 정도면 거의 소고기와 레드 와인 페어링에 맞먹는 훌륭한 페어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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